서울 한복판에서 만난 세계, 팬미팅에서 읽는 문화의 공통어

Photo of author

By Vincent Allen

도시락을 까먹을 때 보면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어느 집 도시락이든 밥알 사이에 김치가 들어 있거나, 간장 양념이 배어 있거나, 어딘가 비슷한 냄새가 납니다. 문화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언어가 달라도, 국적이 달라도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훔치는 순간은 모든 사람이 똑같아 보입니다. 팬미팅이라는 행사는 바로 그 ‘도시락의 공통점’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왜 굳이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의 공연장을 찾는 걸까요. 며칠 전 서울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팬미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행사장을 찾은 해외 팬들과의 짧은 대화를 통해, 팬덤이라는 공동체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어떻게 넘어서는지 관찰한 내용을 단계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단계, 입장 전부터 시작되는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작은 장치들입니다. 행사장 로비에는 여러 언어로 쓰인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영어는 기본이었고, 일본어와 중국어, 스페인어까지 보였습니다. 일본에서 혼자 왔다는 한 팬은 “표지판이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처음 방문인데도 길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일본어로 답했지만, 옆에 있던 한국 팬이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 같이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로의 언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같은 순간에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듯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공연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노래’라는 공통어의 작동 방식입니다. 팬미팅은 보통 대화와 게임, 그리고 무대 공연이 섞인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런데 이날 행사에서는 아티스트가 무대에 오르자 객석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베트남에서 왔다는 한 남성 팬은 인터뷰에서 “한국어로 하는 멘트는 자막을 봐야 하지만, 노래가 시작되면 모든 게 필요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사가 무슨 뜻인지 몰라도 멜로디가 주는 분위기와 아티스트의 표정, 춤선 하나하나가 의미를 전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언어 학습 앱을 몇 달 동안 써도 ‘안녕하세요’ 이상을 넘기지 못한 사람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의 후렴구만큼은 정확한 발음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는 노래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팬과 아티스트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이자 신호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 번째 단계로, 행사 중간에 진행된 즉석 질문 시간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사회자가 객석에서 손을 든 외국인 팬에게 마이크를 건넸고, 그 팬은 서툰 한국어로 “좋아해서 왔습니다. 마음이 아픈 날, 노래를 듣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문법적으로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 객석 전체가 박수로 답했습니다. 이 팬은 인터뷰에서 “한국어를 배운 지 1년밖에 안 됐다”며 “가사를 이해하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가 이제는 취미가 됐다”고 전했습니다. 문화적 충격이나 정보 부족 때문에 포기하기 쉬운 지점을, 팬덤 활동이 오히려 학습 동기로 바꿔준 셈입니다. 실제로 그녀가 들고 있던 응원봉에는 손글씨로 쓴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한국어로 ‘우리 같이 행복하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네 번째 단계는 행사가 끝난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공연장 밖에는 여러 나라의 팬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고, 서로의 폰으로 단체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출되었습니다. 태국에서 온 한 팬은 인터뷰에서 “오늘 처음 만난 한국 팬에게 선물을 받았다”며 손목에 찬 팔찌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녀는 “비행기 값과 숙소 비용을 생각하면 가성비가 좋은 여행은 아니지만, 이 팔찌와 오늘의 기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용을 따지는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해외 팬미팅 행사는 분명히 만만치 않은 지출입니다. 비행기와 숙소, 입장권을 합치면 적지 않은 금액이 듭니다. 그러나 그녀의 말처럼, 오래 기억에 남는 경험의 가치는 단순한 금전적 비교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관찰자로서의 정리입니다. 팬미팅 행사는 단순히 스타를 보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한 지점을 바라보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입니다. 언어는 장벽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다리를 놓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행사장에서 만난 해외 팬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했지만,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았습니다. 응원봉을 흔드는 동작, 노래의 후렴구에 맞춰 몸을 흔드는 리듬, 눈물을 닦는 손동작은 전 세계 어디서나 똑같았습니다.

결국 팬미팅은 콘서트보다 작고, 시상식보다 화려하지 않지만, 가장 밀도 있게 팬과 아티스트가 연결되는 순간입니다. 문화 소식이나 연예인 인터뷰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화려한 무대 뒤에는, 이렇게 작은 교감의 순간들이 쌓여 있습니다. 자녀나 가족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팬미팅을 찾는다면, 비용 대비 단순한 볼거리만이 아니라 이런 문화적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함께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오늘 관찰한 것처럼, 팬덤은 언어를 가르치고, 문화를 나누고, 낯선 사람끼리도 한순간에 친구가 되게 만드는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요.